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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2013

저녁에 -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 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삶은 그분이 주셨지만,
즐거움은 내가 드릴 선물입니다.

얼굴은 그분이 주셨지만,
표정은 내가 드릴 선물입니다.

몸은 그분이 주셨지만,
건강은 내가 드릴 선물입니다.

입은 그분이 주셨지만,
좋은 말을 말하는 건 내가 드릴 선물입니다.

가정은 그분이 주셨지만,
천국으로 만드는 건 내가 드릴 선물입니다.

배우자는 그분이 주셨지만,
사랑하고 섬기는 건 내가 드릴 선물입니다.

4.07.2013

'단풍드는 날' 중, 도종환

버리고 떠나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4.01.2013

소리 하나 중 -이철수

해가린 구름보고 압니다.
밤도 구름도 별빛도 큰 밝음의 치장일 따름.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3.15.2013

3.12.2013

소멸의 순간 - 강세형

어쩌면 가장 슬픈 순간,
관계에 있어 가장 슬픈 순간은,
그런 순간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마음에 일부러 생채기를 내며 독기를 내뿜는 순간도,
눈물 흘리고 다투고 매달리고를 반복하는 격정의 순간도,
그리고 끝내 이별을 맞이하는 순간도 아닌,
'찬란히 반짝이던 사랑의 불빛이 소멸되는 순간,
그 소멸을 직시하게 되는 순간.'
그래서 나는 조금 슬퍼지고 말았던 것 같다.

왠지, 보고 싶지 않은 순간을 봐버린 느낌.
왠지, 보지 않아도 될 순간을 봐버린 느낌.

가로등이 꺼지는 순간.
빛을 잃은 그림과 다시 마주하건 순간.
그리고,
더 이상 반짝이지 않던 그 사람을, 처음 깨닫게 된 순간.
그렇게 내 안의 가로등 하나가, 꺼지는 순간을.

3.07.2013

나는 건축을 이렇게 생각한다 - 김중업

건축은 인간에의 찬가이다.
인간의 보다 나은 삶에 바쳐진 또 하나의 자연인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빚어놓은 엄청난 손짓이자 귀한 사인(sign)이다.

자연 속에 건축이, 건축 속에 자연이 서로 관통해 조화롭게 호흡하는 모습은 
인간이 이루어놓은 업적의 극치일 것이다.   
건축을 종합예술이니 질서의 샘이라고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참다운 건축은 인간에게 감동을 주고 
우리를 끝없는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드라마를 연출한다. 
건축은 가까이 다가오는 이들에게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건축을 '얼어붙은 음악'이라고도 한다. 
건축은 그리 흔한 존재가 아니다.
무수히 구축한 무질서 속에서도 
고고히 자신을 지키고 있는 귀한 존재만이 건축이라고 불린다.  
그러므로 건축에는 만의 하나 정도의 확률밖에 없는데 
이를 위해 건축가는 시간과 공간 속에 자신을 송두리째 불사르는 것이다.

집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
집이 매력에 넘치는 것은 우리들을 희열 속에 끌어올리기 떄문이요,  
쓸모를 넘어 미래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집이란 지나치게 빈틈없이 꾸며졌다는 사실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운 것.  
설령 제한된 비좁은 공간일망정 터진 곳이 있어야 한다. 
또한 꽉 막힌 곳도 있어야 한다.

집이란 패각과도 같이 완벽해야 하나, 그 속에 파도소리가 율동있게 울리듯이.
집이란 크다고만 좋은 것이 아니고 작다고 불편한 것이 아니다.
집에는 질서가 깃들어야 한다.   
구석구석이 제대로 꾸며져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어느 한 구석은 마음 푹 놓고 기대고 
또한 같이 속삭일 수도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예술사의 가장 중요한 장을 장식하고 있는 건축은 
또한 기술사에도 적지않은 업적을 남기고 있어, 
때로는 기술적인 면에 각광을 비추기도 한다.
이러한 건축의 양면성은 기능과 조형과의 완전일치를 꾸준히 요청받아 왔으며, 
이 어려운 무제에 정확한 답을 얻어낸 이들만이 건축가라는 칭호를 받아왔다.
냉철한 지성과 동시에 뜨거운 감성이야말로 건축가가 지녀야 할 마땅한 자질이다.

건축물은 완성되는 순간부터 작가를 떠나버린다.
한 개인이 창조한 결과가 작가의 것만이 아닌 사회 속으로 객관화한다.
그 후 건축가에겐 책임과 함께 비판이 따른다.
이 사회와 끊을 수 없는 관계 떄문에 건축가는 대중 앞에 벗고 서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참다운 건축가는 시대를 이끌어왔고, 
또한 그러한 이들의 작품만이 시간의 흐름 속에 확실한 모습으로 남는다.

우리의 현행법은 여러 모순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 집행에 있어서 좋지 못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음은 유감스런 일이다.
예를 들자면, 건축창작의 올바른 방향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할 교수의 창작활동을 
교육공무원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현실은 
건축디자인을 가르칠 교수의 존재가치마저 부인하는 결과를 낳고 
자질향상의 길마저 막고 있는데, 
축척되어야 하는 실제의 경륜없이 어떻게 학생들에게 창작의 미학과 기술을 전달할 수 있겠는가.

아키텍쳐라는 말은 라틴어로 '큰기술'이라는 어원에 바탕을 둔다.
'크다'는 것은 '위대한 것' 곧 '예술'을 뜻하며, 
첨단을 걷는 기술을 구사하여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바로 건축임을 말해준다.

건축가는 두뇌와 손이 정지됨으로써 비로소 휴식을 얻는다.
자기 머리를 짜고 자기 손으로 그려내기까지의 산고를 스스로 포기한 사람을 
누구도 건축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전후 거대한 프로젝트의 출현에 따라 대형 설계사무소들이 수준작을 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술 재료 정보의 대형화로 인하여 인원과 재원을 대량 동원하여 
큰 프로젝트를 식속하고 무난하게 해결하는 제도를 굳이 마다할 까닭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대형새무소도 소수의 우수한 디자이너 없이는 우수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다.

건축창작 활동이 단지 엔지니어링일 수만은 없기 때문에 이는 자명한 이치이다. 
여러 나라의 대형 건축사무소에 있어서도 
오리지널하고 장인정신에 철저한 아틀리에와의 공동설계가 보다 나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바람직한 경향이라 아니할 수 없다.

건축의 기능이나 아름다움은 모두 생활이라는 기반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므로 좋은 건축을 위해서는 생활이라는 인간속성을 
모두 감지할 수 있는 예민한 감정과 더불어, 
이제까지 축적된 기술과 전통을 간파하는 단호한 지성이 필요하다.
이 양지는 건축가의 필수적인 자질인 도시에 커다란 목표가 된다.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공법과 자재, 공간파악의 개념도 발전하였고 
시대에 따라 형태도 달라져 왔다. 
이제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이 우리들의 건축언어이므로 
이들 가운데서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살리느냐 하는 것 
또한 오늘의 건축가가 해야 할 창조활동의 근간이 된다.

세계 대륙 도처에 인간의 감동을 수놓은 멋진 작품들이 과거, 현재, 미래에 건쳐 
세워지고 지어지고 이어져 왔으며, 앞으로도 그것은 계속 될 것이다. 
건축창조에의 뜨거운 입김은 동서고금을 가림 없이 장소와 시간 위에서 항시 새롭게 펼쳐진다.
그러기에 건축은 '시대의 거울'이라 불리워진다.

건축이란 특정한 장소, 필요한 사명을 띠고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남과 같을 수는 물론, 닮을 수도 없는 창작품이다.
지표면 위에 뚜렷이 수놓아지는 작업이기에 죽은 후에도 책임이 분명하게 따라다닌다.
예산이 모자랐다든가 의뢰한 사람이 비상식적인 위인 또는 기관이었다든가, 
시공하는 이가 부실했다든가 따위의 변명은 시간 앞에서는 정당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서 있는 그대로가 증거일 따름이다.
물론 시간이 흘러 덧붙여졌다든가 또는 일부 헐렸다든가 하는 시간의 관여는 불가피하나, 
원형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창작이기에 여지없이 비판의 대상이 된다.

집은 아름다워야 한다.
공간에는 우리들의 꿈이 있어야 한다.
집을 아름답게 꾸며 보려는 건축가가 있다면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는 이단의 존재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패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잊혀진 것들을 되찾기 위한 출발점이다.
' 이 작품에는 많은 시간과 정열이 쏟아졌다. 그러기에 아름답다'는 독백은, 
아름다운 것의 사랑 속에서만 창조된다는 천리를 시사해 준다.

사회가 오늘날과 같이 비인간적인 메카니즘 속에서 
부조리와 소외의 숨막히는 상황에 빠져들수록, 
소박하고 인간적인 정감이 넘쳐 흐르는 것이에의 향수를 품으려 함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예술에 있어서도 추상적인 것이 벽에 부딪히면 반동으로서 
인간의 근원을 이룬 소박한 감정에 호소하는 예술이 출현하게 마련이다.

집은 아름다워야 하고 정성어린 공간으로 꾸며져야 하며, 그러기에 예술로 이어야 한다. 
현대인의 생활이 기계화하면 할수록 삶의 보금자리인 집은 
개성있는 아름다운 공간으로서 인간을 감싸 주어야 한다.
집은 정년 예술이어야 하고 이 작업을 건축가는 사랑으로써 수행햐애 한다.

대중을 설득하여 이끌어나가는 것이 바로 문화의 발전이요 역사다.
사회에 끌려가는 자는 이미 건축가가 아니다.   
설득이란 진지하면서도 자신에 충실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먼 앞을 내다 볼 수 있는 지평적 비전과 함께 내엄한 현실파악이 동시에 필요하므로 
건축가란 항시 내면화에 충실해야 한다.

건축가도 인간이기에 희노애락에 민감하고 시대성에 자기를 맞추어가는 속성을 지닌다.
그러나 뚜렷한 것은 자기를 직시하고 
올바른 자화상을 그려야 하는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 속에서만이 
뚜렷한 흔적을 남겨왔다는 사실이다.
죽는 순간까지 심신의 도야 속에 인간에게 경건히 바쳐지는 수도의 경지에서 
어쩌다 잉태되고 모진산고 끝에 태어나는 건축작품이란 무척 드물고 귀한 것임에 틀림없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버티고 있는 반동강이가 되어버린 
파르테논이라는 그 시대의 숭고하고 아려하던 모습을 우러러 볼 때 
걸작이란 그래도 남을 수 있는 확률이 무척 높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기에 헤아릴 수 없는 건축가들이 만의 하나 의 확률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자신을 갈아 빚어가는 심정을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파르테논이며 종묘가 우리들의 호흡 속에 명백히 흘러 
더욱 슬기로움을 보이고 많은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 
시간을 이겨 남은 것들을 우리는 유산이라고 하며 
더욱 알뜰히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남기려 한다. 
인류의, 민족의 슬기로움을 공간에 빚어 
두손 모아 바치는 작업만이 참건축가가 해야 할 사명이다.

선(禪:고요할선)하는 자세와 끊임없는 극기와 공간체험이 깊고 맑을 때 빚어지는 것들만을 
참건축이라 부를 수 있다.

건축가의 모든 문제는 그 자신이 건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건축가의 건축관은 작업의 방향과 공간에 대한 개성을 형성하는데, 
이는 외부의 요인과 자기 내부에 축척되어 있는 내적 요인에 의해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건축가의 개성과 경륜이 다른 것처럼 건축작품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건축가는 어제도 내일도 아닌 자신이 딛고 있는 바로 오늘만을 창조해야 한다. 
따라서 건축은 운명적이다.

살 고 싶어야 하잖은가.
꿈이 있고 시가 있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정다웁게 모여  
살고 싶어져야 하 잖은가.

'홀로 사는 즐거움' -법정스님

꽃이 꿀을 품고 있으면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벌들은 저절로 찾아간다.
어디에 힘을 쓸 것인가.
내 속에 꿀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소리쳐 부르는 것에 힘 쓸 것인가.

11.19.2012

y.o.

그녀의 작품은 예리하고 엉뚱해지만 시적이고 다정했으며 유머가 가득했다.

9.28.2012

낙타가 사막을 건널 때 - 송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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껑충한 네 다리에 작은 머리
등에 돋아난 두 봉우리는
천상 고난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고난도 약이 되는지
슬픔도 삭히다 보면 힘이 되는지
두 눈 껌벅이며 순종의 길을 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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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편하게만 살 수 없는 법
네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사막이요
사막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낙타이리니

9.26.2012

창작을 위한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

의도적, 기술적으로 어떤 것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개성이나 독창성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

9.19.2012

Kandisky

예술을 위한 예술은 예술가의 힘을 무산시킬 뿐이다.
예술가는 무엇인가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가의 임무는 형식을 지배하는게 아니라,
내용에 적합한 형식을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8.20.2012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나는 그녀가 빨간색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그녀는 파란색이었다.
정반대의 색을 가지고 있어서 한순간 주춤 물러서기까지 했다.
하지만 얼마를 더 만났더니 그녀는 차라리 흰색이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대상의 색이 없어지고
오히려 지워져 창백해진다.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으로 대상은 참을 수 없이 완벽해지기 때문이다.

사랑은 한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
사랑할때의 행복을 밖으로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상태가 사람을 키운다.
애써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넘치는 상태만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8.01.2012

Hans Sedlmayr

예술이 구체적인 형태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다가가고
형식과 과제가 갖는 의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예술이 비예술적 힘에 굴복하기를 거절하는 데서,

예술이 인간적인 내용을 포기하지 않는 데서,

예술이 세계 질서를 인정하고 그에 따르는 데서,

우리는 진정한 현대예술을 만날 수 있다.

4.22.2012

사랑한다는 것으로 - 서정윤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의 곁에 두려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한다

4.09.2012

십자가는 내 손에 못박는 사람을 위해 기도한 곳이고,
모든 비난에도 침묵한 곳입니다.

조정민

2.18.2012

조그만 땅만 봐도 씨앗을 뿌리려는 것처럼

1.27.2012

겸손의 향기

매일 정성껏 물을 주어 한포기의 난초를 가꾸듯
침묵과 기도의 샘에서 길어올린 지혜의 맑은 물로
우리의 말씨를 가다듬게 하소서
겸손히 그윽한 향기 그 안에 스며들게 하소서.

이해인/ 겸손의 향기 중

1.17.2012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

둥그렇게 모여 앉아 글짓기를 하고, 동화책을 그리고 함께 노래를 하는 일상적인 매일.

누가 자기같은 사람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고 물으면,
"눈과 마음만 있으면 그리지 별거냐?"는 것이 그녀의 대답이란다.

그녀는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그림을 좋아해 그림을 계속 그리도록 하신다고 믿는다.